자격증만 따면 끝? 옛말이다… AI와 불황의 협공, 전문직의 비명
무너지는 철밥통 신화, 그 이면에는'사'자 들어가는 전문직 자격증 하나면 평생이 보장되던 시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 취업 시장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던 회계사, 개발자, 변호사 등 전문직군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경기 침체라는 거시적 악재와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도입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맞물리면서, 소위 '철밥통'이라 불리던 이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전문직 시장의 지각변동 실태를 심층 취재했다.회계사 : 합격의 기쁨도 잠시, 미지정의 늪가장 먼저 경고등이 켜진 곳은 회계 업계다. 힘든 고시 공부 끝에 자격증을 거머쥐었지만, 정작 일할 곳을 찾지 못하는 '미지정 회계사' 사태가 심각하다.올해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 1,200명 중 수습 기관에 등록된 인원은 고작 26%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의 수요 예측 실패와 맞물려 있다. 과거 회계 투명성 강화를 명목으로 선발 인원을 대폭 늘렸으나, 경기 불황으로 기업들의 감사가 줄어든 탓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계법인들이 신입 회계사가 도맡던 기초 업무에 AI를 도입하면서 신규 채용 문은 더욱 좁아졌다.개발자 : AI의 역습과 국경 없는 채용 전쟁IT 업계의 상황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최근 미국의 한 명문대생이 AI를 이용해 빅테크 기업의 코딩 면접을 통과하며 "AI가 1초면 푸는 문제를 인간이 외워서 푸는 건 무의미하다"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이는 단순 코딩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음을 시사한다.
국내 기업들 역시 비용 절감을 위해 한국 개발자 대신, 인건비가 저렴하면서도 AI 활용 능력이 뛰어난 인도·파키스탄 등 해외 개발자를 원격으로 채용하는 추세다. 수백 군데 이력서를 넣어도 탈락하는 국내 주니어 개발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변호사 : 5년 차의 업무를 1분 만에… 생존을 위한 적응보수적인 법조계에도 AI 바람은 거세다. 최신 법률 AI는 수백만 건의 판례를 학습해, 기존 5년 차 변호사가 반나절 걸려 작성하던 서면을 단 1분 만에 완성한다.비록 '환각 현상(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오류)'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지만,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는 인간을 압도한다.
이에 따라 변호사 협회 등 직역 단체는 비전문가의 AI 법률 서비스 제공을 경계하며 규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미 현장에서는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변호사와 그렇지 못한 변호사 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지식 노동의 종말, 새로운 생존법을 찾아야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은 명확하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직업적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하기 시작한 지금, 우리가 정의하던 전문성의 기준은 바뀌어야 한다.이제 시장은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부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원한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과거의 인력 양성 모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며, 구직자들 역시 변화된 생태계에 맞춰 AI 활용 능력과 창의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만이 이 거대한 파도 속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202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