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0명이 사라지는 나라, 일본 사회를 떠받치는 '죠하츠'라는 침묵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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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발을 선택한 사람들

유튜브 채널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는 일본 사회에 존재하는 독특한 현상, ‘죠하츠(蒸発)’를 조명한다. 죠하츠는 말 그대로 ‘증발’처럼 기존의 삶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한 번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라지고 싶다는 상상을 해보지만, 일본에서는 이 상상이 실제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계 최고 치안 국가의 기묘한 실종 통계

일본에서는 매년 8만~10만 명이 실종 신고된다. 2023년 기준으로 하루 약 240명, 7분에 한 명꼴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범죄 피해자가 아니다. 범죄나 사고 정황이 없으면 경찰 수사가 개시되지 않는 일본의 제도 특성상, 상당수는 스스로 사라진 ‘죠하츠’로 남는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매년 최소 수천 명이 의도적으로 삶을 증발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치심에서 도망치는 문화의 기원

죠하츠의 뿌리는 에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고, 신분제와 상호 감시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평판은 생존 그 자체였다. 한 번 수치가 찍히면 평생 벗어나기 어려웠고, 그 수치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망’이었다. 신분 차이의 연애, 과도한 세금, 소문과 평판을 피해 사라지는 선택은 당시에도 반복되었다.


고도성장 뒤편의 그늘

1960년대 이후 일본은 급격한 경제 성장과 도시화를 겪었지만, 전통적 가치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특히 이혼과 실패는 개인 문제가 아닌 가문의 수치로 여겨졌다. 결혼 실패, 직장 좌절, 가정 붕괴 속에서도 도망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는 사람들을 다시 ‘사라짐’으로 몰아넣었다. 1967년 다큐멘터리 영화 『인간 증발』 이후, 죠하츠는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버블 붕괴 이후 더욱 깊어진 그림자

1990년대 버블 붕괴는 죠하츠를 더욱 가속화했다. 사업 실패, 빚, 실직, 파산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집단의 수치로 인식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 부담을 견디지 못했다. 일본 문화가 죄책감보다 수치심을 중심으로 작동한다는 분석처럼,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존재 자체를 지우는 선택’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죠하츠를 돕는 야반 이사업체와, 사라진 사람을 찾는 탐정 산업까지 등장했다.


사라질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한가

일본에서 죠하츠가 가능한 이유는 제도적 환경에도 있다. 자발적 실종에 대한 수사 부재, 가족조차 접근할 수 없는 개인정보, 느슨했던 신원 관리 체계는 완전한 ‘증발’을 가능하게 했다. 최근 마이넘버 제도 도입과 디지털 추적 기술로 죠하츠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수치를 피하기 위해 사라져야만 하는 사회 구조가 유지되는 한, 죠하츠는 형태를 바꿔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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