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 왜 '타닥타닥' 장작 소리에 끌릴까… 뇌가 기억하는 핑크 소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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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소음 넘어 자연 닮은 '핑크 노이즈' 각광…

심리적 안정과 청각 마스킹 효과 탁월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장작 타는 소리’나 ‘빗소리’를 10시간 이상 반복 재생하는 영상이 수천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나 집중력이 필요한 수험생이 주요 시청자다. 현대인은 왜 뚜렷한 서사도 없는 단순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까. 이는 단순한 취향을 넘어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이 얽힌 생존 본능의 결과다.


‘지지직’거리는 백색소음? 자연은 핑크다

우리가 흔히 집중력 향상에 좋다고 알고 있는 ‘백색소음(White Noise)’은 주파수 대역이 일정하다.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들리는 ‘지지직’ 소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영상 속 장작 소리나 빗소리는 엄밀히 말해 ‘핑크 노이즈(Pink Noise)’ 혹은 ‘갈색 노이즈(Brown Noise)’에 가깝다. 핑크 노이즈는 저음역이 강조되고 고음역으로 갈수록 에너지가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1]


소리의 스펙트럼이 옥타브당 3데시벨(dB)씩 줄어드는 핑크 노이즈는 자연의 소리와 주파수 패턴이 유사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과거 연구 및 최근 음향 심리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핑크 노이즈는 뇌파를 안정적인 알파파 상태로 유도한다. 이는 뇌가 소리를 ‘소음’이 아닌 ‘배경’으로 인식하게 해 청각 피로도를 낮춘다. 기계적인 백색소음이 꽉 끼는 정장이라면, 핑크 노이즈는 헐렁한 잠옷인 셈이다.


원시 인류의 기억, 안전한 피난처 효과

사람들이 장작 소리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인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가설로 설명된다. 인류는 수만 년 동안 자연 속에서 생존해 왔다. 동굴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는 맹수가 활동하지 않는다는 신호였고, 타오르는 불 소리는 체온 유지와 요리가 가능하다는 안전 신호였다.


자연 소리의 심리적 효과
  • 안전 신호 : 빗소리, 불 소리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안전함을 의미.
  • 동조 효과 : 뇌파가 자연의 리듬(1/f 파동)과 동조되어 이완.
  • 부교감 신경 활성화 :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 감소.

2023년 영국 서식스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 인간의 뇌는 휴식과 관련된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된다. 반면 인공적인 소음은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키는 교감 신경을 자극한다. [2] 현대인은 본능적으로 도시의 소음 공해를 벗어나 원시적인 ‘안전 기지’로 회귀하려는 욕구를 가진다.


소음으로 소음을 덮다, 청각 마스킹

기술적인 측면에서 장작 소리는 ‘청각 마스킹(Auditory Masking)’ 효과를 낸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떨어뜨린 볼펜 소리는 천둥처럼 들리지만, 시끄러운 카페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이는 배경 소음이 특정 소리의 인지 역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장작 소리나 빗소리는 일정한 볼륨을 유지하며 주변의 돌발적인 소음을 덮어준다. 층간소음이나 자동차 경적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 이러한 영상을 찾는 이유다. 2024년 1월 슬립테크(Sleep Tech) 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노이즈 마스킹 기능이 탑재된 수면 이어폰 시장은 전년 대비 15% 이상 성장했다. [3] 소리가 뇌의 ‘깜짝 놀람’ 반응을 사전에 차단해 깊은 수면이나 몰입을 돕는 것이다.


의존성은 경계해야… 청각 과민 우려도

모든 사람에게 장작 소리가 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소음 의존’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잠들기 위해 매일 밤 영상을 틀어놓으면, 나중에는 이 소리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수면 개시 불면증’의 변종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청각 과민증(Misophonia)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복적인 장작 파열음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대한청각학회 관계자는 “이어폰으로 장시간 80dB 이상의 볼륨으로 청취할 경우 소음성 난청을 유발할 수 있다”며 “스피커를 통해 잔잔하게 공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귀를 쉬게 하려다 귀를 혹사시키는 모순은 피해야 한다.


‘디지털 자연’의 진화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소리를 활용한 힐링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녹음을 넘어 사용자의 심박수에 맞춰 소리의 템포를 조절하는 AI 기반 사운드 테라피도 등장하고 있다.


수학적으로 볼 때, 복잡계인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가 증가할수록 단순하고 규칙적인 1/f 파동(핑크 노이즈)에 대한 수요는 비례하여 증가할 확률이 높다. 장작 불멍 영상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 인류가 찾은 새로운 형태의 ‘전자 신경 안정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용어 설명

[1] 핑크 노이즈(Pink Noise) : 옥타브당 에너지가 반비례하여 줄어드는 잡음으로, 사람의 귀에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들리는 소리 대역.

[2]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 : 위급 상황에서 교감 신경이 흥분하여 몸을 방어하거나 도망칠 준비를 하는 생리적 반응.

[3] 슬립테크(Sleep Tech) : 수면(Sleep) 기술(Technology) 합성어로, 첨단 기술을 활용해 수면의 질을 분석하고 개선하는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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