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가 50만 원? 호텔 케이크 오픈런… 스몰 럭셔리와 빈곤감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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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마케팅과 보상심리가 빚어낸 초고가 케이크 열풍, 소비 양극화의 달콤 쌉싸름한 단면
50만 원짜리 한 입의 행복 혹은 허상
2025년 12월, 대한민국 서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금, 백화점 명품관이 아닌 호텔 베이커리 앞에 긴 줄이 늘어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급 호텔들이 내놓은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가격이 30만 원을 넘어 최고 50만 원에 육박했음에도, 예약 개시와 동시에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지갑을 닫는다는 뉴스가 무색하게, 왜 사람들은 한 끼 식사값보다 비싼 디저트에 열광하는가? 본지는 스몰 럭셔리 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경제학적 기제와 소비 심리를 해부한다.
베블런 효과의 정점 :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
주요 특급 호텔(신라, 조선, 롯데 등)의 2025년 크리스마스 케이크 라인업은 그야말로 '가격 파괴'가 아닌 '가격 폭발' 수준이다. 프리미엄 식자재인 화이트 트러플이나 최고급 위스키를 사용했다는 명분 아래 가격표는 전년 대비 10~20% 이상 상승했다. 경제학 용어인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가 이 시장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이는 가격이 오르는데도 과시욕이나 허영심으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맛'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호텔 로고가 박힌 케이크 상자를 들고 나오는 순간의 만족감, 그리고 이를 SNS에 인증했을 때 얻게 될 사회적 인정을 구매하는 셈이다. 호텔업계는 이를 간파하고 '한정 수량'이라는 팻말을 걸어 희소성 마케팅을 펼친다. 12월의 케이크 예약 전쟁은 흡사 유명 아이돌의 콘서트 티케팅을 방불케 하는데, 성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달콤한 승리감'은 케이크 맛보다 더 중독적이다.
집은 못 사도 케이크는 산다… 보상심리의 발현
그렇다면 이것을 단순히 부유층만의 잔치로 볼 수 있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주 구매층인 2030 세대에게 이 케이크는 ‘스몰 럭셔리)’의 결정체다. 스몰 럭셔리란 자동차나 명품 가방 같은 고가의 사치재는 구입하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그러나 동종 제품군 중에서는 가장 비싼) 식료품이나 화장품 등을 구매하며 심리적 만족을 얻는 소비 행태를 말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30 세대의 실질 소득 증가율은 둔화되었으나 오락·문화 및 음식 숙박 지출 비중은 오히려 유지되거나 소폭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현재의 확실한 행복에 투자하려는 심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50만 원은 절대적으로 큰 금액이지만, 명품 가방에 비하면 100분의 1 수준이다. 1년에 딱 한 번, 나를 위한 선물로서 이 정도 사치는 허용된다는 '심리적 회계'가 지갑을 열게 만든다.
2025 크리스마스 케이크 시장의 3대 키워드
- 양극화(Polarization) : 50만 원대 호텔 케이크 vs 1만 원대 편의점 가성비 케이크로 시장 양분.
-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 맛보다는 압도적인 비주얼과 브랜드 로고가 구매의 핵심 기준.
- 감정비용(Emotional Spending) :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지갑을 여는 행위. 소소하게 쓰던 '홧김비용'이 호텔 케이크라는 럭셔리 영역으로 확장됨.
편의점과 호텔 사이의 간극
이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는 극명한 소비 양극화가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수십만 원짜리 케이크를 예약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두드리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고물가 여파로 1~2만 원대 편의점 케이크나 마트 치킨으로 홈파티를 준비하는 '가성비족'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11월 소비자동향조사(CSI)에 따르면, 생활형편전망CSI는 여전히 기준치(100)를 하회하고 있어 전반적인 소비 심리는 위축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평균의 실종'이라고 진단한다. 중간 가격대의 브랜드들이 설 자리를 잃고, 초고가 혹은 초저가 시장으로 소비가 쏠리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초고가 케이크 열풍이 상대적 박탈감을 조성하고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하지만 시장경제 논리상 기업의 고가 전략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결국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지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에 휩쓸려 무리한 지출을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달콤한 크림 뒤에 남는 것이 카드 명세서의 쓴맛뿐이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가격 저항선은 어디인가?
수학적 확률 모델과 과거 명품 가격 추이를 고려했을 때, 호텔 케이크의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래칫 효과(Ratchet Effect, 소득이 줄어도 소비 수준은 쉽게 낮아지지 않는 현상)'에 따라, 한번 높아진 소비자의 눈높이와 가격 저항선은 쉽게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50만 원을 넘어 60~70만 원대의 '하이엔드 주얼리 협업 케이크'가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추정). 다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급격한 피로감을 불러올 수 있다. 2026년 크리스마스에는 '가격'이 아닌 진정한 '가치'와 '스토리'를 담은 케이크가 다시 주목받을지, 아니면 가격표의 0이 하나 더 늘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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