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일방 차렸다간 곧바로 역모죄?"… 왜 조선시대 배경의 무협지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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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과 웹툰 플랫폼의 대중화로 '무협(武俠)' 장르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화산파, 무당파 등 구파일방이 등장하고 내공과 기를 다루는 무림 고수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스친다. 상상력이 허용되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통 무협 소설은 찾아보기 힘들까?


구독자 150만 명 이상을 보유한 인기 지식 유튜브 채널 '사물궁이 잡학지식'은 최근 영상을 통해 이 흥미로운 궁금증에 대한 역사적·지리적 해답을 내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의 시대적 환경이 무협 소설의 핵심인 '문파(門派)'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무협의 뼈대 '문파'… 강력한 중앙집권 앞엔 "어림없다"

무협 소설 속 '문파'는 독자적인 무력과 재원, 자체적인 무공을 갖춘 사실상의 '소규모 국가'다. 중국 역사에서 중앙 권력이 미약할 때 각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무력 집단이 그 모티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사적 무장 집단이 생겨날 여지가 원천 차단되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막강한 중앙 권력이다. 조선은 건국 초기 태종 이방원에 의해 개인이나 가문이 소유한 사병(私兵)이 철저히 불법화되고 혁파되었다. 제주도 같은 도서 지역까지 중앙 정부의 통치력이 미쳤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평민부터 노비까지 군대에 편제되는 '속오군' 제도가 시행될 만큼 국가의 군사 통제력이 확고했다. 문파를 조직해 사병을 육성하는 것 자체가 곧 국가에 대한 '역모'로 간주되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무공 익힐 시간에 글공부해야지"… 엘리트들의 목표는 '과거 급제'

지역 엘리트들의 성향도 무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협 소설 속 세력가들은 그 지역의 무력을 장악한 인물들이지만, 조선의 유력 엘리트들은 무력을 기르기보단 글공부에 매진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과거에 합격해 중앙 관직에 진출하거나, 학문적 성취를 통해 이름을 날리는 것이었다. 굳이 반역으로 몰릴 위험을 감수하며 문파를 조직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지방의 유지들이나 향리들 역시 지방 정부의 테두리 안에서 사무를 담당하며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관(官)과 무림(강호)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무협 소설 특유의 '관무불가침' 조약은 조선에서 애초에 성립될 수 없었다.


숨을 곳 없는 좁은 영토와 빽빽한 인구

지리적, 환경적 요인도 한몫했다. 한반도의 영토는 좁았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도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아 물자와 소식이 빠르게 전달됐다. 만약 지방에서 불법 무장 단체(문파)가 세력을 키우려 한다면, 눈치채기도 전에 중앙군의 즉각적인 토벌을 맞아야 했다.


그렇다면 깊은 산속에 숨어 몰래 세력을 키울 수는 없었을까? 이 역시 불가능했다. 당시 조선은 인구 밀도가 매우 높았다. 18세기 말 기록에 따르면 땔감을 구하기 위한 벌목으로 전국 곳곳이 민둥산이었고, 산림 자원이 모자라 남부 지방 백성들이 북부로 이주할 만큼 인구 압력이 심각했다. 무림 고수들이 은둔하며 수련할 만한 고립된 첩첩산중이나 빈 땅이 한반도 내에는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귀신이 사또를 찾아간 이유가 있었다"

결국 조선시대는 철저한 중앙집권과 공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사물궁이는 "조선시대 고전 소설인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전'을 보면 억울한 귀신조차 무림 고수가 아닌 시장이나 도지사 격인 '사또'를 찾아가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다"며 시대적 한계를 유쾌하게 짚어냈다.


이러한 명확한 역사적 제약 때문에, 현대 장르 소설에서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할 때는 정통 무협 대신 궁중 권력 투쟁, 전쟁 영웅 서사, 혹은 조선 말기 격변기의 암투를 다루는 대체역사물 등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일반적인 작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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