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허스트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현대미술은 왜 1000억 원의 해골을 낳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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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0일,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영국 현대미술의 '악동'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개막했다. 오는 6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방부제 용액에 담긴 4m짜리 상어부터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주조된 해골까지 60여 점의 문제작을 서울 도심 한복판에 쏟아냈다.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자본주의 시스템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이번 전시는 개막 직후부터 문화계의 거센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변기에서 시작된 질문, 기술에서 '개념'으로
현대미술은 종종 대중에게 "저건 나도 하겠다"는 식의 냉소를 유발한다.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인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작품이 경매에서 약 80억 원에 낙찰되는 현실은 상식의 궤도를 가볍게 이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슨트 정우철은 이러한 난해함의 기원을 1917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남성용 소변기 '샘'에서 찾는다. 기성품도 작가가 맥락을 부여하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은 미술의 규칙 자체를 완전히 전복시켰다.
사진기의 발명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전통적 회화의 존재 이유를 지워버렸다. 기술적 '테크닉'의 자리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개념'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 눈에 보이는 세계를 옮기던 화가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 감정과 시스템을 시각화하는 철학자로 변모해야만 했다.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일은 더 이상 미적 쾌감을 따르는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작가가 던진 엉뚱한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궁리하는 고도의 심리 게임이 된 셈이다.
이후 미술사는 크게 네 가지 혁명적 흐름으로 분화했다. 이는 현재의 데미안 허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징검다리다.
- 추상표현주의: 구체적 형태를 버리고 거대한 색과 몸짓만으로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쏟아낸다(마크 로스코)
- 팝아트: 슈퍼마켓의 수프 캔처럼 대중문화의 산물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고 기계적 복제를 도입한다(앤디 워홀)
- 퍼포먼스 아트: 캔버스를 벗어나 작가의 신체 자체를 재료로 삼아 관객의 본성을 실험실에 올린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
- 미디어 아트: TV 등 기계와 기술을 예술의 도구로 선언하며 장르의 벽을 무너뜨린다(백남준)
죽음과 자본을 마주하다, 허스트의 충격 요법
데미안 허스트는 앞서 열거한 현대미술의 유산을 한 몸에 흡수한 '콜라주' 같은 인물이다. 1988년 런던의 버려진 창고에서 기획한 '프리즈(Freeze)' 전시는 영국의 전설적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는 곧 YBA(Young British Artists, 1990년대 영국 현대미술을 주도한 젊은 예술가 그룹)라는 거대한 태풍으로 성장했다. 의대 해부학과를 드나들며 죽음에 매료됐던 10대 소년은, 훗날 동물의 사체를 갤러리로 끌어들이는 시각적 파괴자가 되었다.
이번 전시의 백미인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은 호주산 상어를 통째로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가두어 놓은 작품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어 앞에서는 어떠한 미학적 해석보다 원초적인 죽음의 공포가 먼저 피부에 닿는다. 이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장전된 총을 관객에게 맡기며 폭력성을 실험했던 것처럼, 관객의 신체적 감각을 향해 직접 날리는 예술적 '명치 때리기'라 할 수 있다.
제작비만 약 250억 원이 투입된 다이아몬드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자본주의의 정수를 찌른다. 18세기 유럽인의 실제 두개골을 백금으로 본뜨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빈틈없이 박아 넣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고전적 경구를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물질로 포장한 이 작품은, 영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찬란하고 동시에 허무한지를 조롱하듯 웅변한다.
물론 그를 향한 시선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보수적인 미술 평론가들은 그를 "예술의 본질을 훼손하고 자극만 따르는 상업적 사기꾼"이라 맹비난하지만, 시장은 그를 시대의 천재로 추앙하며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예술적 가치는 재료인가, 아이디어인가, 아니면 시장의 인정인가'라는 논란 자체가 허스트가 의도한 거대한 퍼포먼스의 일부로 작동하는 형국이다.
조수들의 붓질과 불타는 캔버스, 시스템을 묻다
그의 작업 방식 역시 도발적이다. 1,400여 점이 넘는 '스팟 페인팅(Spot Painting)' 시리즈는 작가의 손길이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다. 앤디 워홀이 조수들과 공장(Factory)에서 작품을 찍어냈듯, 허스트 역시 조수들에게 일정한 규칙을 주고 색을 칠하게 했다. 예술가의 영혼이 깃든 '손맛'이라는 오랜 신화를 산산조각 내고, 작가는 오직 시스템을 설계하는 기획자로 남은 것이다.
'약장' 시리즈는 현대인이 종교 대신 맹신하는 과학과 의료 시스템을 해부한다. 약국 선반처럼 정돈된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알약의 화학적 원리도 모른 채 증상을 낫게 해줄 것이라 맹신하는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 이는 흰 가운을 입은 제약회사가 과거 사제들의 자리를 꿰찼음을 보여주는 예리한 사회학적 진단으로 평가받는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허스트의 실험은 실물과 가상의 경계를 불태우는 데 이르렀다. 2022년 그는 1만 점의 실물 회화를 NFT(대체 불가능 토큰)로 발행한 뒤, 관객에게 '실물'과 'NFT'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강요했다. 결국 NFT를 선택한 사람들의 몫인 수천 점의 실물 그림이 공개적으로 화형당했다. 예술의 소유권이 물질에 있는지, 디지털 원본 증명에 있는지를 시험한 이 기행은 21세기 미술사에 기록될 가장 극적인 양자택일이었다.
이러한 행보는 이해상충의 소지를 낳기도 한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전 세계 금융이 붕괴하던 날, 그는 갤러리를 배제하고 소더비 경매에 자신의 작품을 직접 내놓아 이틀 만에 약 1,110억 원을 쓸어 담았다. 갤러리 중심의 유통 구조를 파괴한 이 사건은, 그가 자본의 논리를 비판하면서도 누구보다 그 논리를 영리하게 착취하는 모순적 존재임을 관측하게 한다.
결론 및 전망
결국 허스트의 전시는 '질문하는 능력이 곧 권력'이 되는 AI 시대의 훌륭한 모의고사다. 2025년 말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한국 미술시장 결산' 및 국립현대미술관 내부 데이터에 따르면, 경기 침체 속에서도 하이엔드급 블루칩 작가에 대한 대중의 문화 소비 심리는 오히려 결집하는 경향을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이번 전시가 2013년 개관 이래 최대 흥행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관람객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수학적 확률도 75% 이상으로 관측된다.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압도당하기보다, 유리 수조 속 상어와 눈을 맞추며 "이것도 예술인가?"라는 불온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 그것이 1000억 원짜리 해골을 가장 '가성비' 있게 소비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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