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브이로그는 지쳤다… 2030 여성들이 '그림 그리는 라디오' 이연(LEEYEON)에 빠져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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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명품 언박싱, 숨 가쁜 숏폼(Short-form) 콘텐츠가 범람하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정적인 위로'로 100만 가까운 구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크리에이터가 있다. 바로 그림 유튜버 '이연(LEEYEON)'이다.


단순히 그림 실력을 뽐내는 미술 채널도, 화려한 일상을 전시하는 브이로그 채널도 아니다.

쓱쓱 스케치북을 채우는 연필 소리와 함께 덤덤하게 이어지는 그의 '인생 독백'은 왜 수많은 2030 여성들의 멘토로 떠올랐을까?


보여주기 경쟁에서 탈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기존의 인기 여성 라이프스타일 브이로그 채널들이 주로 '워너비(Wannabe)'의 삶을 전시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연의 채널은 '공감'과 '결핍'에 집중한다.


인기가 많은 여성 브이로그 채널들은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예쁜 소품, 정갈한 요리 과정을 보여주며 시각적 힐링과 대리 만족을 선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 채널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동경을 자극한다면, 이연의 영상은 "나만 이렇게 불안한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준다.


그녀는 영상 속에서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 입시 미술 실패 경험, 퇴사의 두려움 등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고, 화려한 편집 대신 그림 그리는 손과 목소리만으로 화면을 채우는 그녀의 '미니멀리즘'은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디지털 디톡스'를 제공한다는 평이다.


튜토리얼이 아닌 '에세이', 그림은 거들 뿐

미술 카테고리 내에서도 이연의 포지셔닝은 독보적이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초고해상도의 작화 과정과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는 '기술적 경이로움'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연에게 그림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에 가깝다.


그녀의 콘텐츠는 시각 정보보다는 청각 정보(내레이션)가 핵심이다. 마치 라디오처럼 영상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거나, 잠들기 전 듣는다는 구독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림은 그녀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정보 전달 위주의 미술 채널보다는 오히려 에세이 채널의 문법과 더 닮아 있다.


2030 여성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언니의 화법

전문가들은 이연 채널의 성장 배경에 'MZ세대의 불안'이 있다고 분석한다. 훈계하듯 가르치는 '선생님' 톤이 아닌, 먼저 고민을 겪어본 '동네 언니'나 '친구' 같은 화법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화려한 뷰티 유튜버들이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팁을 공유할 때, 이연은 내면의 단단함을 기르는 법을 이야기한다. 특히 "재능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다", "소심한 성격도 장점이 된다"는 그녀의 메시지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 지친 여성 구독자들에게 강력한 심리적 안전지대를 제공한다.


한 미디어 분석가는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낀 이용자들이 긴 호흡으로 사유할 수 있는 '슬로우 콘텐츠'로 회귀하고 있다"며 "이연은 그림이라는 아날로그적 소재와 진솔한 스토리텔링을 결합해 독자적인 장르를 구축한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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