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 맞아? 수채화 같은 투명함… 유럽 홀린 이해반 작가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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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외 미술계가 한 신진 작가의 캔버스에 주목하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이해반' 작가. 파스텔톤의 몽환적 색채와 안개가 낀 듯한 모호한 경계, 그러나 그 속에 숨겨진 날 선 긴장감이 유럽 갤러리부터 국립현대미술관까지 사로잡았다. 서양의 재료로 동양의 깊이를, 아름다움 속에 분단의 비극을 녹여낸 그의 작품 세계를 분석했다.
물성(物性)의 초월: 기름으로 쌓아 올린 수묵의 깊이
이해반의 작품을 마주한 관객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이게 유화인가?"다. 유화 특유의 두껍고 꾸덕꾸덕한 질감 대신,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 색감이 캔버스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독보적인 텍스처의 비밀은 작가의 '이력'에 있다. 학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먹과 안료가 종이에 스미는 전통 기법을 서양 재료인 유화와 아크릴에 접목했다. 기름을 많이 섞어 묽게 만든 물감을 캔버스 위에 아주 얇게, 수십 번 겹쳐 올리는 방식이다.
[ 주요 기법 특징 ]
- 글레이징(Glazing)의 극대화 : 얇은 물감층을 막처럼 겹겹이 쌓아 빛이 투과하는 듯한 효과
- 동서양의 조화 : 동양화의 '스미는' 감성을 불투명한 유화 물감으로 구현
- 결과물 : 몽환적이고 영롱한 질감, 경계가 모호하면서도 선명한 시각적 체험
이러한 노동집약적 작업 방식은 단순한 기교를 넘어 작가만의 고유한 시그니처가 됐다. 전통적 서양화법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깊이감이 여기서 나온다.
뷰파인더 속의 아이러니 : 가장 아름다운 금지된 땅
그의 그림이 단순히 '예쁜 그림'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피사체 때문이다. 몽환적인 핑크빛 산세와 꽃밭처럼 보이는 풍경의 정체는 다름 아닌 DMZ(비무장지대)다.
강원도 철원 출신인 작가에게 DMZ는 남들에게는 뉴스 속 장소지만, 본인에게는 익숙한 고향 풍경이었다. 통일전망대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철조망 너머의 세상은 사진 촬영도, 접근도 불가능한 금단의 구역. 작가는 카메라 대신 눈과 기억에 의존해 이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화면 속에 둥둥 떠다니는 기하학적 도형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이는 지뢰 경고판이나 출입 금지 표지판을 상징한다. 가장 평화로워 보이는 자연 속에 가장 살벌한 경고를 숨겨둔 셈이다. 이러한 반전은 관객에게 시각적 유희와 동시에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개념의 확장 : 물리적 완충지대를 넘어 심리적 완충지대로
초기작이 DMZ라는 특정 장소의 사실적 재현에 집중했다면, 최근작은 그 세계관이 확장되는 추세다. 대표적인 것이 '배틀그라운드' 시리즈다.
폭발적인 전쟁의 이미지를 만개하는 꽃처럼 표현한 이 시리즈는 가로 8m가 넘는 대형 설치 미술로도 구현된다. 전쟁과 자연, 불안과 평온, 현실과 환상이라는 상반된 가치가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지 않고 부드럽게 섞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심리적 완충지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남과 북을 떼어놓은 물리적 공간(DMZ)을 넘어, 그림을 통해 갈등이 화해하고 치유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이는 현대 예술이 추구해야 할 사회적 기능을 미학적으로 풀어낸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K-아트의 새로운 블루칩 될까
미술 시장의 침체기에도 독창적인 기법과 확실한 서사를 가진 작가는 살아남는다. 이해반은 '테크닉(동양적 유화)'과 '스토리(DMZ)'라는 두 가지 무기를 모두 갖췄다.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보편적인 미학으로 승화시킨 점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강력한 소구점이다.
수학적으로 볼 때, 노동집약적 작품은 생산량의 한계가 있어 희소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해외 레지던시와 국내 주요 미술관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추세를 볼 때, 그의 작품 가치는 우상향 곡선을 그릴 확률이 높다. '아름다운 전쟁터'를 그리는 그의 붓질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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